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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큰 꿈을 키우는 부산대학교

부산대학교는 1946년 5월 15일 지역민의 헌금으로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 국립대학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위대한 여정을 함께해오며 지역 거점국립대학으로서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부산대학교 전경사진

시민 헌금으로 국립대학 설립기금 마련

1945년 해방 이후 국가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 이전의 교육정책은 미군정에서 결정·집행하였고, 고등교육에 대한 개혁 방향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전문학교를 4년제 대학으로 재편하는 데 있었습니다. 당시 경상남도 당국은 도민의 숙원인 국립대학 설립에 총력을 집중하여 미군정청이 제시한 국립대학 설립기금 1,000만 원 조달에 매진하였습니다. 고성의 옥천사는 사찰 소유의 토지 13만 5천 평(당시 500만 원 감정)을 내놓았고 지역민과 기업들은 십시일반 헌금을 모아 1,000만 원이 넘는 1,032만 9,000원의 기금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 중 1,000만 원은 미군정청 문교부에 국립대학 설립기금으로 납입하였고, 일부는 대학도서관을 채울 막대한 양의 장서 확보에 사용되었습니다.

1946년 5월 15일 국내 최초의 종합국립대로 출범

국립대학 설립의 기초작업이 일단 완료된 뒤에는 당시 경상남도 학무과장이었던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이 나서 대학 설립을 위한 제반 행정절차를 밟았습니다.

이에 1946년 5월 15일 윤인구 경상남도 학무과장과 학무과 고문관 에디 중위가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한미 양 문교부장의 최종 결재를 얻어냄으로써 국립부산종합대학교의 설립이 확정되었습니다. 정식 교명은 ‘국립 부산대학’으로 정해졌고, 인문학부와 수산학부의 두 학부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때의 학부는 오늘날의 단과대학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1946년 3월 7일에 공포된 대학령 제2조 후단에는 인문계 및 자연계의 학부가 병설될 때는 2개 이상의 학부로써 ‘종합대학교’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1946년 8월 22일 대학 명칭은 국립부산대학교, 학부 칭호는 인문과대학, 수산과대학으로 개칭되었다가 1948년 7월에 수산과대학은 ‘국립부산수산대학’으로, 인문과대학은 ‘국립 부산대학’으로 분리·확정되었습니다.

  • 1946년 대연동 구교사
  • 1947년 서대신동 임시교사

윤인구 초대총장, 새벽벌에 진리·자유·봉사의 건학이념을 세우다

1953년 4월 3일에는 문리과대학·법과대학·상과대학·공과대학·약학대학·의과대학 등 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부산대학교’를‘종합대학교’로 승격하는 대통령 재가가 내려졌습니다. 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을 부산대학으로 변경한 뒤 신 종합대학교를 재건하기 위하여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 쾌거였습니다.

같은 해 9월 15일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에 의해‘부산대학교 설치령’이 대통령령으로 공포됨에 따라 부산대는 국립 종합대로 정식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11월 26일에는 총장서리였던 윤인구 박사가 초대총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 1953년 윤인구 초대총장 취임식
  • 진리자유봉사

리처드 위트컴 미 군수사령관, 부산캠퍼스 부지 마련에 큰 도움

윤인구 초대총장은 부산대가 1946년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 국립대학으로 출범하고도 캠퍼스 부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데 고심하던 중 당시 유엔군 부산군수사령관이었던 위트컴 장군을 만나 협력을 의뢰했습니다. 이에 위트컴 장군이 대한미군원조처(AFAK) 자금에서 25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대학 당국은 약 165만㎡(50만 평)의 장전동 부지를 물색해 정식 수속을 밟아 신교지를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미 공병부대가 공사를 담당해 인근 온천동과 부산대 사이 연결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 리차드 위트컴 장군
  • 한복차림에 갓을 쓴 위트컴 장군
  • 1954년 부산대학교 동래교사 건설부지앞에서의 윤인구 초대총장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 위에 미래 100년의 꿈과 비전을 바로세우는 부산대학교

1953년 새롭게 종합대학교로 승격한 부산대학교는 다음해인 1954년 금정산 동쪽 기슭의 약 50만 평에 이르는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같은 해 12월 효원 교사 신축 기공식을 거행함으로써 서대신동·충무동 교사 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효원 시대’를 맞았습니다. ‘효원(曉原)’은 부산대를 일컫는 말로 윤인구 초대총장이 장전동의 캠퍼스 부지를 답사하며 새벽벌(曉原·효원)로 불렀다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새벽벌인 효원 캠퍼스는 진리·자유·봉사의 원천이며 교육과 연구의 산실로서 부산대학교의 항구적인 보금자리로 터를 잡았습니다.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 100년의 꿈과 비전을 바로세우고 있는 부산대학교가 세계 중심을 향한 힘찬 도약과 비상을 이어갑니다.

  • 초창기 부산캠퍼스 스케치
  • 1961년 무지개문과 본관(현 인문관)
  •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기공식에서 악수를 나누는 위트컴 장군과 윤인구 총장
  • 동래 효원교사 신축 기공식
  • 부산대학교 부산캠퍼스_전경